열음빵의 휴직이야기, 1개월 차 : 백일이야기

About 2015/02/24 14:00 SEOULMILK

육아휴직 1개월 차.

출산휴가를 일찍 들어간 보람있게, 1주일 만에 나와줬던 그는 이제 백일사나이가 됩니다.

손재주가 많은 사람도 아닌데 또 백일상 대여는 천편일률적이라 못 고르던, 여기 이 요구 많은 엄마미는 그래도 깔끔하게 한번 차려보자 합니다. 남들 다 하는 걸 안 하자니 시간의 흐름이 느껴져 왠지 안타까워지는 마음이, 손재주도 없는 저를 움직이게 하나 봐요.

준비를 시작하면서 다들 그렇듯 우리의 친구 네이놈에게 물어봅니다. 이름도 모르는 백일상 선배 엄마미들은 무얼 하셨을까. 가렌더니 픽이니 번팅이니 랜턴이니 선배들이 만드는 각종 파티용품은 한국에서 나고 자란 이 사람에게는 너무… 힘겹지요.

그래도 나는 엄마미다!! 맘을 다잡고 인터넷으로 랜턴, 가랜드, 번팅을 삽니다. 미쿡 빅마마 마샤아줌미의 랜턴셋트와 빠리빵집의 천송이 케익으로 낙찰. 썰렁하면 안되니 번팅하나 배송비를 빼고자 가렌더 만들기 세트를 삽니다.

과일은 홀수로 놓는다기에 하나로마트에서 실한 놈들로 사과 배 한라봉을 한 박스씩 구매하고,
결혼선물로 외할마미에게 받은 도예가의 그릇을 위아래로 엎어 파티 그릇 고고씽-.

허전할까 컵케익을 퇴근하는 신랑에게 주문합니다. 홍차 프린스를 사온 신랑은 이쁘고 하트머핀을 사온 신랑은 덜이쁘고.. 하이드&지킬도 아닌 한 신랑인데 말이죠^^
어쨌든 이쁜 머핀 6개를 장전하니 짱짱맨.

사촌 누나에게 물려받은 핑크빛 범보의자에 살포시 하늘색 스와들겉싸개옷을 입혀주고!

아 왕자님에게는 왕관이 필요하니 반짝거리는 사람이 되길 바라며 틈틈이 리틀스타를 직접 수놓은 엄마미표 수제 핸드메이드 펠트 왕관을 뙇!!
아. 어느 별 하나, 어느 한땀 같은 게 없는^^ 핸드메이드의 매력이란…갱장해요. 북유럽스타일 왕관이라고 우겨볼게요.

외할마마가 들뜬 맴으로 최고의 떡집에서 공수해오신 백설기와 수수 팥떡을 이쁘장하게 올리고 50일사진과 리본첨부한 명주실, 엄마미가 아끼는 아기양말과 인형 액자 등 소품까지 올리고 나니 요래요래 20% 부족하지만 나름 깔쌈한 백일상이 나오더랬죠 힝

다들 아기 보며 즐거워하며 보낸 점심이었어요.

행복한 시간을 잡아두지 못하는 것, 이 시간이 무지무지 그리워질 날이 오리라는 것은 이렇게 좋은 시간을 가지는 데 대한 댓가이겠지요.

온종일 함께하는 것은 시간의 유한함을 이유로 더 애틋하게 느껴집니다. 까만 눈동자로 바라보는 이 아이는 엄마와의 종일이 유한하다는 걸 알까요.
하지만 또 그 언젠가엔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 할지도 모르죠. 제가 그랬던 것처럼, 나중에 아기가 이 사진들을 보며 “으아 촌스럽다” 해도 그때는 그 나름의 재미였다며 웃을 날들이 오겠지요. :-)

이제. 휴직이 11개월 남았습니다.